벤허를 생각하며, 이 세상과 믿음의 길에 대하여

오래전 보았던 영화 *벤허(Ben-Hur)*를 떠올린다.
형제와 다름없다고 믿었던 친구의 배신.
한순간에 가문이 무너지고 가족이 흩어지는 비극.
벤허는 악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선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선한 사람이라고 해서 고난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 예수님은 목마른 벤허에게 한 모금의 물을 건네주신다.
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보아 주신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그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지는 않으신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하게 된다.
주님은 우리의 고통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개입하시지도 않는다.
주님은 우리보다 더 멀리 보시고 더 깊이 아신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주님의 침묵을 외면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침묵 속에서도 주님은 일하고 계셨음을 깨닫게 된다.
훈련소 같은 인생

군에 입대한 병사를 생각해 본다.
그는 자신이 가진 대부분의 것을 내려놓고 군이 지급하는 것으로 살아간다.
훈련을 받는 동안에는 자유도 제한되고 편안함도 사라진다.
그러나 그 과정은 병사를 망가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련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때로는 그런 훈련소처럼 느껴진다.
원하지 않았던 일을 만나고,
억울한 일을 겪고,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지나기도 한다.
그 순간에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하지만 훗날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우리를 조금 더 강하게 만들고, 조금 더 겸손하게 만들고, 조금 더 주님을 의지하게 만들었음을 알게 된다.
누구의 음성을 따를 것인가
태초의 아담과 하와를 생각해 본다.
그들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길.
그리고 뱀의 달콤한 속삭임을 따르는 길.
그들은 결국 다른 음성을 선택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어린아이의 자리에서 나와 스스로 비바람을 맞으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름답다.
햇살은 찬란하고,
꽃은 아름답고,
사랑은 따뜻하다.
그러나 동시에 악도 존재한다.
욕심과 거짓과 배신과 폭력이 함께 살아간다.
빛과 어둠이 같은 공간에 공존한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선택해야 한다.
오늘 나는 누구의 음성을 따를 것인가.
왕의 표식을 가진 사람
이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며 더욱 분명하게 느끼는 것이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 나아가고,
주님의 손을 붙들고,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주님을 찾는 사람은 완벽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누구의 손을 붙들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왕의 표식을 가진 사람처럼,
주님의 이름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폭풍은 여전히 불어오고,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주님의 손을 붙들고 걷는 사람은 결국 길을 잃지 않는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제 마음에 함께하여 주옵소서.
제 생각 속에 함께하여 주옵소서.
제 숨결 속에 함께하여 주옵소서.
제가 제 뜻을 따르기보다
주님의 뜻을 구하게 하시고,
주님의 손을 놓지 않게 하소서.
이 혼란한 세상 가운데서도
주님의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수정해야 할 부분들을 알려주세요.